신용회복경험담
농촌 여성의 개인회생 이야기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5.27 15:05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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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소박했지만 나름 만족스러웠던 농촌 생활 (약 270자)
저는 전남의 작은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50세 주부입니다. 남편과 함께 농사일을 해오며 아이 둘을 서울로 대학 보내고, 결혼 후 한 번도 도시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요. 삶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계절 따라 흘러가는 일상과 마을 사람들, 소소한 수입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빚'이라는 건 제 삶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죠.

2. 전개: 희망이었던 창업, 현실은 실패의 연속 (약 450자)
문제의 시작은 자녀들이 독립한 뒤였습니다. 농사만으로는 노후가 걱정되어, 시내에서 프랜차이즈 카페를 하나 차리기로 했습니다. 브랜드 본사에서 교육도 받았고, 은행 대출과 카드 대출로 점포 계약과 인테리어까지 마쳤죠. 총 투자금은 약 1억 3천만 원, 제 손으로 해낸 첫 사업이라 기대도 컸습니다.
하지만 시골 도심은 생각보다 유동 인구가 없었습니다. 코로나 시기까지 겹치면서 손님은 거의 없었고, 매달 고정비만 수백만 원씩 나갔어요. 카드로 돌리고 또 돌리며 버텼지만 결국 3년 만에 문을 닫았습니다. 그 후엔 이자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혔고, 어느새 채무는 1억 1천만 원까지 불어 있었습니다. 은행 두 곳과 카드사 두 곳에서 빌린 돈이었습니다.

3. 위기: 집까지 날릴 뻔한 절망의 끝에서 (약 360자)
대출 연체가 시작되자 곧 독촉 전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에도 몇 통씩 전화가 울리고, 우편물엔 빨간 글씨로 ‘채무 상환 독촉’이 찍혀 있었습니다. 결국 농지 일부를 팔아도 모자라 집 담보까지 거론되는 상황까지 갔죠. 이대로는 가족에게도 민폐라고 생각하니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을 이장님의 조언으로 처음 ‘개인회생’이라는 제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솔직히 두려웠어요. “내가 그런 처지였단 말이야?” 자존심도 상했고요. 하지만 모든 걸 내려놓고 상담을 받으러 간 날,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나처럼 사업 실패한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알았고, 절차가 생각보다 정당하고 체계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4. 해결: 구체적인 계획으로 다시 살아가는 길 찾기 (약 450자)
상담 후 바로 필요한 서류들을 모았습니다. 재산 목록, 소득 증빙, 채무 내역까지 꼼꼼히 정리하고 개인회생 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상담부터 인가 결정까지는 약 4개월 걸렸습니다.
법원 출석 당시 저는 한 문장, 한 문장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했어요. “실패한 건 저였지만, 다시 책임지고 살고 싶습니다.”라고요. 다행히 제 상황이 받아들여졌고, 월 42만 원씩 60개월(5년) 변제하는 조건으로 인가가 났습니다. 원금 일부는 탕감되었고, 무이자 분할 상환이 가능한 구조였기에 정말 숨통이 트였죠.
지금도 여전히 농사일은 힘들지만, 변제금을 제 손으로 갚아나가며 ‘빚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통장 잔액이 0이어도 마음만은 편안하달까요.

5. 결말: 다시 씨 뿌리는 심정으로, 천천히 앞으로 (약 270자)
개인회생을 시작한 지 2년이 되었습니다. 변제는 한 번도 빠짐없이 잘 이어가고 있고, 이젠 집안에 웃음도 조금씩 돌아오고 있습니다. 아직 3년이나 남았지만, 끝이 보인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됩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 창업 실패로 모든 걸 잃었다고 느끼는 분이 있다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혼자서 감당하려 하지 마세요. 부끄러운 게 아니라, 제도를 활용해 다시 ‘자립’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걸 꼭 기억해주세요. 저처럼 다시 뿌리를 내릴 수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