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도박보다 소중한 건 가족이었습니다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8.07 17:28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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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소박하지만 평온했던 일상 (약 15%)
저는 전남의 한 농촌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50세 주부입니다. 남편과 함께 고추와 배추, 참깨 같은 작물을 키우며 살아왔고, 자식 둘은 도시로 나가 대학도 졸업하고 각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시골에서의 삶이 힘들긴 해도, 자연 속에서 소소하게 사는 삶에 만족하며 지냈죠. 그때까지만 해도 돈에 쪼들리는 일 없이, 계절 따라 움직이는 삶이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2. 전개: 도박으로 무너진 일상 (약 25%)
문제는 남편이 허리 수술을 받고 일을 쉬게 되면서 시작됐어요. 소득이 줄자 저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무료한 틈을 타 휴대폰으로 스포츠 도박 앱을 접하게 됐습니다. 처음엔 소액으로 시작했고, 몇 번 따보니 ‘이걸로도 벌 수 있겠다’는 착각이 들더군요.
그러나 그건 함정이었습니다. 잃은 돈을 메꾸려 더 큰 금액을 걸게 되고, 결국 손에 쥔 돈이 바닥나면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았습니다. 저축은행 대출도 서너 번 돌렸죠. 어느새 채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6,500만 원에 달했고, 이자는 매달 수백만 원씩 나가는데 원금은 줄지 않았습니다. 밤에 잠도 못 자고, 전화벨만 울려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어요.

3. 위기: 무너진 신뢰와 개인회생 결심 (약 20%)
도박이 들통났을 때, 남편은 말도 없이 며칠을 외면했습니다. 아이들한테도 말 못 하고, 혼자 끙끙 앓았죠. 그러던 중, 서울에 사는 딸이 추석에 집에 왔다가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제 휴대폰을 확인하게 됐습니다. 딸은 펑펑 울며 “엄마, 이러다 진짜 큰일 나요. 우리도 도울게요. 회생 신청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결국 용기를 냈습니다. 사실 그 전부터 개인회생이란 걸 인터넷에서 찾아보긴 했지만, 창피하고 겁이 나서 미뤄왔거든요. 딸이 함께 상담 예약을 해주고, 동행까지 해줬어요. 첫 상담 날은 손이 덜덜 떨렸습니다. ‘내가 여기까지 떨어졌구나’ 싶었지만, 상담사분이 제 이야기를 공감해주고, 현실적인 방법이 있다고 설명해주니 숨통이 트이더라고요.

4. 해결: 개인회생 과정과 변화 (약 25%)
개인회생 신청부터 인가 결정까지는 약 4개월 걸렸습니다. 서류 준비가 꽤 까다롭긴 했지만, 차근차근 도와주는 곳이 있어 큰 문제 없이 진행했어요. 법원 출석은 단 한 번이었고, 판사님께 직접 제 상황을 말씀드렸습니다. “앞으로 절대 도박은 안 하겠습니다.”라는 다짐도 했죠.
결국 인가가 나서 월 28만 원씩 3년간 갚는 계획으로 조정되었습니다. 원금 중 일부만 변제하게 됐고, 나머지 채무는 면책 대상이 되었어요. 한 달 수입이 일정치 않지만, 계절 따라 수확물을 판매하며 계획대로 납부하고 있습니다. 회생 중이라 여전히 신용카드는 못 쓰고, 생활은 빠듯하지만 마음은 훨씬 가볍습니다.
무엇보다, 가족과의 신뢰를 조금씩 회복해가고 있다는 게 제일 큰 변화입니다. 아이들과 주고받는 연락도 자연스러워졌고, 남편과도 예전처럼 밭에서 함께 웃으며 일하게 됐어요.

5. 결말: 다시 희망을 꿈꾸며 (약 15%)
현재 회생 1년차입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저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으려 합니다. 빚의 무게가 아니라, 다시 일어나려는 의지가 더 크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앞으로는 도박과 완전히 끊고, 마을 부녀회 활동이나 가공식품 창업 같은 새로운 시도도 해보려 합니다. 절망의 끝에서 제 손을 잡아준 가족 덕분에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혹시 저처럼 도박으로 무너져버린 삶 앞에 서 계신 분이 있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혼자 끙끙 앓지 마시고, 상담부터라도 받아보세요. 회생이라는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시작이 늦었을 뿐, 끝까지 가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