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아이 미래만 생각했는데, 제 삶이 무너졌죠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5.30 14:20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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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평범했던 농촌의 일상과 자식 사랑 (약 15%)
저는 전남의 한 시골 마을에서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짓고 있는 50살 주부입니다. 봄이면 논밭일, 여름이면 과수원 손질에 하루해가 짧을 만큼 바쁜 삶이었죠. 자녀 둘은 모두 도시에서 대학을 다녔고, 큰애는 졸업 후 유학을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농사만으로는 넉넉하진 않았지만, 아이들 뒷바라지만큼은 최선을 다하고 싶었습니다.
큰애가 유학 준비를 시작하면서, 여기저기 돈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등록금, 생활비, 항공권까지… 생각보다 들어가는 돈이 많더라고요. 처음엔 저축한 돈과 소액 대출로 시작했지만, 금방 바닥이 났습니다. 결국 은행 두 곳에서 학자금 대출을 받고, 부족한 부분은 카드 현금서비스와 마이너스 통장으로 메우기 시작했습니다.

2. 전개: 아이는 날아갔지만, 나는 무너져갔다 (약 25%)
처음 1~2년은 “괜찮다, 다 아이 잘되라고 하는 일이니까”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아이가 외국에서 잘 적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놓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원금보다 이자가 더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카드사 두 곳에서 받은 대출은 금리가 높아 매달 50만 원 이상 이자를 갚아야 했고, 은행 대출도 원금 상환이 시작되면서 한 달에 80만 원 이상 나가더군요. 농사 수입은 계절을 타는 데다, 기상이변으로 수확이 좋지 않았던 해는 빚을 메우기 바빴습니다.
문제는 농한기였습니다. 소득이 없는 겨울철에는 카드 돌려막기까지 하게 됐고, 대출금이 쌓이기 시작했죠. 어느새 총 부채가 8천만 원을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저는 점점 우울해졌고, 남편 몰래 눈물 흘리는 날도 많아졌습니다.

3. 위기: 남몰래 앓던 속병이 터진 날 (약 20%)
정말 무너진 건 작년 겨울이었습니다. 한파로 작물 피해가 심각했고, 예상했던 수입이 절반도 되지 않았어요. 결국 카드 대금이 연체되고, 은행에서 연체 이자 고지서가 날아들었습니다. 마을 이장님 댁으로 대부업체에서 전화가 온 날, 너무 창피해서 땅이 꺼지는 줄 알았습니다.
남편에게 처음 사실을 고백했을 때,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더군요. 하지만 다행히도 “이젠 같이 해결하자”며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주변에 조심스럽게 물어보다가 읍내에 있는 법률상담소를 찾았고, 그곳에서 개인회생이라는 제도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많이 망설였습니다. ‘내가 그런 걸 신청해도 되나’, ‘신용불량자가 되는 거 아닌가’ 걱정이 컸지만, 상담해주신 분이 “이건 책임을 다하려는 제도”라고 설명해주셨고, 그 말에 용기를 냈습니다.

4. 해결: 낯설고 복잡했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시간 (약 25%)
개인회생 신청부터 인가까지는 약 4개월이 걸렸습니다. 소득 자료, 농업 수입 증빙, 재산 내역 등 제출할 서류가 많아 처음엔 막막했습니다. 다행히 읍사무소와 농협을 오가며 필요한 서류를 하나하나 준비했고, 남편도 도와주었습니다.
변제계획은 월 28만 원씩 3년간 갚는 것이었습니다. 총 1,008만 원 정도로, 나머지 채무는 일정 요건 충족 시 면책되는 조건이었죠. 농한기에는 수입이 줄기 때문에 변제금이 버겁긴 했지만, 남편과 함께 일거리를 나눠 맡고, 계절 근로도 병행하면서 겨우겨우 맞춰가고 있습니다.
법원에 출석했을 때는 솔직히 창피했습니다. 농사일하다 흙 묻은 손으로 법원에 앉아 있으니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싶더군요. 하지만 판사님이 제 상황을 이해해주시고, 인가 결정을 내리셨을 땐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5. 결말: 고개 들고 다시 걷는 요즘 (약 15%)
지금은 개인회생 변제 1년 차를 지나고 있습니다. 여전히 쉽지는 않지만, 마음은 한결 가볍습니다. 매달 정해진 금액을 꼬박꼬박 갚으며 “이제는 정리되는 중이야”라고 스스로 다짐하죠.
아이도 유학을 잘 마치고 취업 준비 중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 모든 게 헛된 일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허리띠 졸라매더라도 카드 빚은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빚은 너무 조용히 삶을 파고들고, 나중에는 정신을 갉아먹거든요.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나처럼 아이 뒷바라지하다가 빚에 허덕이는 분이 계시다면 꼭 전하고 싶습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무너졌다고 끝은 아니에요. 회생은 다시 시작하는 길입니다.
저처럼 평범한 농부도, 다시 걷고 있습니다. 당신도 할 수 있어요.

